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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소셜믹스 아파트엔 차별이 산다
② 갈등- 소송으로 번진 대립
소셜믹스 52개 단지 갈등 분석 해보니
서울 마포구 ㅅ아파트 11단지 주민 권오일(78)씨는 아파트 잡수입 배분 문제로 4년 넘게 법적 다툼을 하고 있다. 분쟁은 분양 58가구, 임대 530가구가 사는 소셜믹스 단지에서 가구 비율 10%가량에 불과한 분양세대(입주자대표회의)가 아파트 공동수익인 잡수입을 장기수선충당금으로 적립하면서 발생했다. 아파트 시설 교체나 보수를 위해 매달 적립하는 장기수선충당금은 집주인이 부담하는 비용인데, 90%에 해당하는 임대세대들로서는 억울하게 자기 몫을 빼앗긴 셈이었다. 권씨 등의 민원에 따라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스에이치)는 11단지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부당이득금(장기수선충당금) 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해 올해 초 승소했다. “아파트 수리·보수를 위한 장기수선충당금 적립이 정당하다”며 버티던 입주자대표회의 쪽은 에스에이치가 업무방해 혐의로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힌 뒤에야 잡수입 반환 절차를 밟고 있다. 권씨는 “입주자대표회의가 일방적으로 임차인 몫 잡수입금 1억3700여만원을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돌렸다”며 “잡수입을 분양인들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대부분 소셜믹스 단지에서 발생하는 공통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 11단지 사례는 특이한 경우가 아니다. <한겨레>가 서울혼합주택임차인연합회와 함께 임차인대표회의가 구성된 서울지역 소셜믹스 단지 52곳을 조사한 결과, 이들 단지에서 발생한 갈등 민원은 163건에 달했다. 한 단지에 3건 이상의 분쟁이 발생한 셈이다. 소송으로 이어진 사례도 10건에 이르렀다. 갈등 소재는 △잡수입 분배 △관리 용역업체 선정 △시설물 유지·관리 등으로 다양했다.
이처럼 가장 대표적인 단골 분쟁 소재는 단지 내 재활용품 판매나 광고료 등으로 생긴 잡수입 배분이다. 임차인대표회의가 구성된 소셜믹스 단지 52곳 가운데 49곳에서 이 문제 탓에 분쟁이 발생했다. 임대세대 비율이 70% 이상인 ㅅ아파트 9·10단지도 11단지와 비슷한 갈등을 겪고 있다. 에스에이치가 서울혼합주택임차인연합회에 보낸 공문을 보면 10단지는 어린이집 임대료로 발생한 잡수입 2740여만원을 집주인들이 부담해야 하는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부당하게 적립한 사실을 확인해 소송을 진행 중이고, 9단지에서도 잡수입 부당 적립 문제를 두고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잡수입은 단지에 거주하는 전체 구성원의 공동수입이지만 사용·집행 권한은 분양세대들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의에 있다. 현행법상 소유주가 아닌 임차인은 입주자대표회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 현장 민원을 접수하는 에스에이치 지역센터 한 관계자는 “법에 잡수입 배분에 대한 지침이 없어 중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규약 준칙에는 주택공급면적을 기준으로 잡수입을 배분하지만 구속력이 없어 횡령 같은 불법이 아니면 분양세대와 임대세대 간에 원만하게 갈등을 해결하도록 중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 용역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을 둘러싼 분쟁도 잦다. 조사 대상 가운데 절반이 넘는 29개 단지에서 분쟁이 발생했는데, 5곳은 법정 다툼으로 번졌다. 기존 경비원들을 지키려는 임차인대표회의와 새 경비용역업체와 계약하려는 입주자대표회의 사이 소송이 1년 넘게 이어진 서울 강남구 ㅎ아파트 8단지가 대표적이다. 11개 동에 분양 55가구, 임대 114가구가 사는 혼합주택인 이 단지에서는, 입주자대표회의가 2018년 12월 전체 가구의 70%를 차지하는 임차인들과 협의 없이 새 경비용역 계약을 맺으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서울 강남구 ㅎ아파트 8단지에서는 새 경비업체와 용역계약을 체결하려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기존 경비원들의 해고를 막으려는 임차인들 사이의 소송이 1년 넘게 이어졌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임차인대표회의 설명과 소송기록 등을 종합하면, 임차인들은 입주자대표회의에 새 용역업체와 계약할 때 경비원 3명을 계속 고용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그 뒤 이들은 해고 위기에 몰린 경비원들을 직접 고용하기로 했다. 의견수렴 결과 전체 주민의 70%(분양세대 포함)가 고용승계에 찬성한다는 의견을 밝힌 상황이었다. 임차인대표회의가 근무 의사를 밝힌 경비원 2명과 고용계약서를 썼고, 이후 임차인이 고용한 경비원들은 임대동이 모인 후문 쪽 초소에, 입주자대표회의가 고용한 경비원 3명은 분양동 쪽 정문 초소에서 일하는 상황이 됐다. 불편한 동거는 소송으로 번졌다. 입주자대표회의는 후문 초소에서 근무를 서는 기존 경비원들을 상대로 경비실 퇴거와 업무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지난해 6월 법원은 입주자대표회의의 손을 들어줬다. 임차인대표회의는 경비원들과 고용계약을 맺을 법적 권한이 없다는 게 판결의 근거였다. 결국 임차인들이 고용한 경비원 2명은 입주자대표회의가 임금 지급을 거부한 탓에 6개월치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쫓겨났다. 경비원 김아무개씨는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지만 주민을 믿고 빚내 일했다. 일부 분양 주민들이 반대한다고 일을 못 하고 월급도 받을 수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토로했다. 임차인들도 일방적으로 새 용역업체와 계약한 입주자대표회의를 상대로 지난해 5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혼합주택단지에서 임대사업자(임차인 대리인)와 관련 사안을 협의해야 한다는 근거를 들어 ‘계약 무효’ 결정을 내렸다. 결국 분양인과 임차인이 각각 체결한 두 계약 모두 무효가 된 셈이다. 서울 중랑구 ㄴ아파트에서도 비슷한 건으로 입주자대표회의와 임차인대표회의가 소송을 벌였다. 서울 서초구 ㄹ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용역회사를 일방적으로 선정하는 과정에서 임차인들과 갈등을 빚어 국토교통부 산하 공동주택관리 분쟁조정위원회 조정 결정을 받았다.
서울 강서구 ㅁ아파트 14단지 입주자대표회의는 단지 안 체육시설 운영업체를 선정하는 대표 구성에 임차인을 포함하라는 요청 때문에 입찰이 늦어져 손해를 봤다면서 에스에이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관리소와 분양세대 위주로 선정위원을 꾸려 입찰을 진행하려던 입주자대표회의는 혼합주택 특성상 임대세대 비율에 맞게 위원을 구성하라는 에스에이치의 요청이 부당한 개입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임대사업자인 에스에이치가 입주자대표회의에 임차인 위원 구성 등에 관한 의견을 낸 게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입주자대표회의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서초구 ㅍ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가 최근 개정한 아파트 관리규약에 임차인의 입주자대표회의 참가를 막는 내용이 포함돼 논란이 되고 있다. 제보자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서울 서초구 내곡지구 ㅍ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는 최근 ‘임차인은 입주자대표회의를 방청하고 안건을 제안할 수 없다’는 새로운 관리규약을 의결했다. 기존에는 임차인도 사전에 신청하면 승인 절차를 거쳐 회의를 참관(방청)할 수 있었는데, 이를 막은 것이다. 임차인대표회의 관계자는 “입주자대표회의와 계속 대화를 요구하는데 답변이 없었다. 아파트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어 회의를 방청하려는 것인데 이마저도 막았다”며 “단지 내 대다수 임차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일부 분양세대가 원하는 쪽으로 아파트를 운영하기 위한 횡포”라고 비판했다. 분양과 임대 단지가 사실상 분리된 서울 영등포구 ㄹ아파트에서는 체육·복지 시설 비용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 이 단지 관리소는 시설 이용이 힘든 임대단지 장애인과 70살 이상 독거 세대에도 분양동 쪽 스포츠센터 시설·공사비를 매월 2만5천원씩 관리비로 부과했다. 임차인들은 장애인과 고령 독거 세대에 한해 관리비를 면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관리소는 “분양과 임대 세대 간의 형평성 때문에 모든 주민에게 부과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관리비나 잡수입 지출 내용 등 아파트 운영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갈등이 생긴 단지가 37곳, 입주자대표회의가 서울시 공동주택관리규약 협약서 체결을 거부했다고 민원을 제기한 단지가 28곳이다.
입주자대표회의와 임차인대표회의가 잡수익 배분문제로 4년 넘게 법적다툼을 벌이고 있는 서울 마포구의 한 아파트 단지 전경. 옥기원 기자
결국 소셜믹스 단지 갈등 대부분은 분양세대가 임대세대 주민을 협의 상대나 운영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발생했다. 분양인들이 구성한 입주자대표회의는 의결기구지만 임차인이 속한 임차인대표회의는 협의기구에 불과해 법적인 위상도 다르다. 분양세대와 임대세대를 물리적으로 섞어만 놓았을 뿐 화학적 결합에 필요한 법적, 제도적 정비는 소홀히 해온 결과가 이웃끼리의 다툼으로 터져 나온 셈이기도 하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아파트 실생활에 관련된 결정은 실거주자가 해야 하는데도 법·제도상 모든 의사결정은 소유자만 할 수 있게 제한돼 있다. 소유주에게 집중된 불균형한 법·제도가 갈등의 원인”이라며 “‘집은 그저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정부 기조에 맞게 분양과 임대 세대가 서로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법과 제도의 개선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옥기원 서혜미 송경화 기자
ok@hani.co.kr ▶바로가기: 낡은 벽걸이 찬장이 ‘와장창’… 할머니는 피할 틈도 없었다
http://www.hani.co.kr/arti/area/area_general/97240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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